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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었네요. 대만아 생일 준비 못해서 미안해 ㅜㅠ...














여우비太陽雨, 3편 - 호우

2025.04.25.













본선 2차전 역전패.

미츠이가 두번째로 진출한 전중*全中, 전국 중학교 농구대회 결과였다. 작년보다 훨씬 상황은 좋았다. 1학년 때보다 성장한 미츠이의 상황 판단과 3점은 분명 팀에 강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농구는 팀 플레이 스포츠다. 버거운 상대를 앞에두고 플레이어 모두가 한계까지 움직여야 승리가 손 끝을 스칠까 말까, 할텐데… .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종료 버저가 울린 뒤였다.

카나가와까지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아쉽다.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우승뿐이라는 생각과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패를 만들어낸 상대팀 PG의 드리블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된다. 미츠이가 잠깐 눈을 감으니 미야기의 얼굴이 그 PG의 얼굴과 겹쳐졌다. 꼭 나와 같은 유니폼을 입은 미야기가 아녀도 좋다. 칠이 벗겨진 코트가 아닌 반질거리는 코트 바닥을 미야기가 달린다. 가볍지만 돌파를 하는 움직임은 매섭다. 미츠이가 가르친 대로 스틸하고 빠르게 턴.

… … .


‘료타는 뭘하고 있을까.’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2주간 미야기를 만나지도 못하고 훈련에만 집중했는데 이런 처참한 결과라니. 미야기와 고양이 세 마리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오겠다고 큰소리 쳐놓고 미츠이가 돌아온 시기는 본선이 시작하고 첫 주가 지나지도 않아서다. 맨손으로 돌아왔다는 부끄러운 마음과 빨리 미야기가 보고싶은 마음이 맞질렸다.

귀가 멍해질 정도로 우렁찬 매미소리가 가득한 가로수 사이, 미츠이가 조금 침울한 표정으로 공터 앞에 섰다. 주변 시선을 살피고 매일같이 드나들던 헐거운 패널을 두 손으로 잡아 올리려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확 달려들어 미츠이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밋쨩!”

“우으악!”

“왜 그렇게 놀라.”

"… 료타.”


등 뒤에서 얼굴을 내밀며 놀래킨 미야기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미츠이는 침만 삼켰다.

미츠이의 키만큼 자라난 풀들이 공터안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억세다 못해 울창해진 풀숲에 미야기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꼭 잡았다. 두 손바닥이 금세 땀으로 축축해졌다. 미츠이의 손은 뜨거웠지만 미야기는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꽉 잡아 쥐어보기도 하더니, 앞서가는 미츠이의 옆에서 나란히 걷기 위해 발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두 사람의 비밀기지 주변 외벽에는 이름모를 덩굴이 무럭무럭 자라나 초록에 둘러싸인 광경이었다. 이따금 조각 구름이 여름 볕을 가려 그늘 지면 시야가 짙어졌다가 다시 부셨다. 체온이 높은 미츠이와 뜨거운 열기 속을 함께 몇 분 걷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창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장마가 며칠내내 쏟아지던 날, 남몰래 거짓말까지 하며 외박했던 그날. 미츠이가 기억하기에 그 이후로 미야기가 더 잘 따르는 것 같다. 미츠이가 갑자기 손을 잡아도 놀라거나 홱 빼내지 않았고, 먼저 어깨에 턱을 올리거나 등에 얼굴을 붙이기도 했다. 미츠이가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는게 특히나 귀여웠다.

말도 꽤 잘 들었다. 한가지 정도만 빼면? 공터 근처 야외 코트에 농구하러 가자고 하면 먼저 농구공을 들고 강아지처럼 따라왔다. "내년 전중에서는 꼭 만났음 좋겠다." 슬쩍 흘리듯 말하면 제자리에 멈춰 서서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거다. "농구부는 안 들어갈거야." 너무 단호해서 더 말하려던 것도 쏙들어갔지만 미츠이는 알았다. 미야기가 얼마나 농구를 좋아하는지. 모를 수가 없다. 농구를 꽤 하는 미츠이에게도 미야기의 농구는 눈에 계속 들어온다. 혼자서 이정도의 실력을 유지한다는 건, 진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어.

혹시 집에서 농구를 반대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미츠이는 미야기네에 가서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도 있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건지 도통 알려주지를 않으니 답답하지만 미츠이의 입에서 '농구부’가 나오기만하면 미야기가 눈을 반만 뜨고 대화하려하지 않으니 둘 사이에 터부시 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조금 섭섭하게도 전국 대회에 나갔던 미츠이가 왜 일찍 돌아온건지 미야기는 묻지도 않았다.

해가 건물 뒤로 사라져 비밀기지 위로 그늘졌어도 더위가 사그라 들지 않는다. 후덥한 공기에 미츠이의 이마에서 땀 줄기가 귀 뒤까지 주르륵 흘렀다. 창고의 천장만 보던 미츠이가 몸을 옆으로 돌려 미야기를 본다. 찹쌀떡 같이 둥근 볼 위에 얌전히 감긴 두 눈덩이도 둥글다. 더위에 지쳐 잠든 것 같은 미야기의 볼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려다, 검지만 뻗어 쿡 찔렀다.


“말랑말랑해.”


눈을 뜨고 미츠이의 쪽으로 몸을 돌린 미야기가 똑같이 미츠이의 볼을 검지로 쿡 찌른다.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한데, 바닥에 눌린 볼이 웃겼다. 볼이 찔린 상태로 킥, 웃으니까 미야기도 웃는다.


“밋쨩도 말랑.”

“니가 더 말랑말랑해!”

“먀아아.”


시끄러웠는지 검은 고양이가 미야기의 품속에서 쑤욱, 얼굴을 내밀고 팔뚝에 꾹꾹이를 한다. 거봐 이녀석도 료타가 더 말랑말랑하다고 하잖아. 이건… 아니! 앗, 훗쨩 간지러워. 다른 고양이 두 마리도 바닥에 늘어진채 서로를 열심히 그루밍하더니 꼬리를 바짝 세우고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미츠이가 자리를 비우기 전에 사다둔 사료 자루 끝을 삼색 고양이가 앞발로 툭툭 치면서 조른다.


“그… . 밋쨩, 있지… .”


… …래? 이가 빠진 유리 그릇에 사료를 가득 담아주고 플라스틱 그릇에 남은 물은 창고 밖에 버리고 새 물을 따라 담아주던 미야기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팔베개하고 누워서 밋쨩의 삼색 꼬리를 손으로 장난치던 미츠이가 상체를 바로 세워 앉았다. 고양이 세 마리가 까득까드득 사료 씹어먹는 소리만 가득이다. 못 들었어. 뭐라고?

“불꽃축제에… 같이 갈래?”

여전히 작지만 들릴 정도로 커진 목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그러고 보니 이때쯤이었나. 축제 기간이. 두 번 반복해서 말하는 건 부끄러웠나 보다. 머리를 박고 정신없이 먹는 고양이들의 머리며 등을 쓰다듬는 미야기의 손이 바빴다. 넉넉하게 입은 티셔츠 안쪽으로 보이는 목덜미가 불그스름해 보인다. 그걸 본 순간부터 느껴진 건 여름의 열기가 아녔다.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온 뜨거움이었다.





료타랑 같이 불꽃축제?

불꽃축제를 보러가자고?


— 어이! 밋쨩 듣고있어? 그래서 내일 다카오 녀석이 데려온 애들이랑 축제…

"미안. 나 이미 약속 잡혔어."

— 누구랑? 이 배신자가!

"끊는다."

— 뭐? 야야, 잠깐! 밋,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어서 축제 기간에는 사람들로 항상 붐볐다. 대부분이 연인아니면 가족 단위여서 올해도 미츠이에게 걸려온 전화는 머릿수를 채우려는 목적같다. 상대방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선 전화기의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미츠이는 그저 싱글벙글이다. "토요일 오후 5시, 공터 앞에서 봐." 미야기는 데이트 신청이 부끄러웠는지 공터를 빠져 나오자마자 약속 시간과 장소를 내던지듯 말하고서 골목 밖으로 달아났다. 어찌나 빠르게 뛰어가던지, 몇 초만에 콩알만해져 사라지는 걸 보던 미츠이는 또 가슴 가운데가 간지러워 혼났다.

미츠이에게 고백하는 애들은 많았다. 운동하는데 말끔하게 생겨서는 또래보다 키도 크고 성격도 좋아. 꼭 또래 여자애들이 아녀도 남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인기 있었고. 한 학년 후배나 선배가 미츠이를 보러 체육관까지 찾아온 적도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애들이 정류장에 서있던 미츠이에게 편지를 주고 사라지기도 했고. 하나같이 예쁘고 귀엽게 생겨서 미츠이 당사자보다 친구들이 더 난리였다. 이번 본선 경기까지 보러 온 아이도 있었지만, 미츠이는 웃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누구를 좋아하고 사귀는 게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농구부 3학년 선배와 사귀는 여자애가 매일 같이 체육관에 찾아와 부원들 몫의 음료수까지 챙겨주는 걸 가까이에서 본 적 있다. 큰 경기가 있을 때마다 찾아와 응원하는 모습도 보기좋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커다란 눈동자를 코트 위의 플레이어가 볼 수 없다해도 그 간절함은 감사한 일이지. 그런 마음 전부 탐스럽게 핀 벚꽃처럼 보송하고 하늘하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다만 미츠이에게 그 모든게 흥미롭거나 부럽지가 않아서… . 농구만큼 욕심나는 분야도 아녔다. —게다가 최근 한 달은 미야기와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여유롭지도 않았으니까?

농구, 미야기 료타, 고양이 세 마리.

아마도, 열다섯 미츠이의 여름은 그렇게 채워져있었다.

더 욕심낼 이유가 있을까. 미야기와 있으면 간질거리는 이유가 여자애들이 원하던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미츠이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굳이 관계를 정의하지 않더라도 미야기는 미츠이와 고양이가 있는 그 비밀기지에 올 거다. 미야기와 같은 학교 같은 팀으로 뛸 수 없더라도 미츠이가 원한다면 원온원은 할 것이고, 이번 여름 불꽃축제처럼 새해 신사 참배도 함께 하자면 받아들이겠지.

일본에서 불꽃축제로 저명한 지역만큼 큰 규모는 아니어도 꽤 크고 화려했던걸로 기억한다. 불꽃을 쏘아올리는 시간은 꽤 늦은 밤인데, 그보다 훨씬 일찍 만나자는 미야기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생긴 건 초등학생 같아서는 생각하는 건 미츠이보다 더 맹랑할지도 모른다. 불꽃놀이가 시작하기 전까지 해변도로에 길게 들어선 작은 가게들을 함께 보며 놀 생각에 꽤 들떴다. 작년 축제에 다카오가 데려온 유카타입은 여자애와 어색하게 붙어있을 일도 없겠지.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한 미츠이가 비밀기지에 램프를 켜고 고양이들에게 밥과 물을 챙겨주고 다시 골목으로 나왔다.

그러나 미야기는 약속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일기예보에도 없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미야기네 거실 창문에 매달린 테루테루보즈*맑은 날씨를 기원하는 인형가 무색했다.

오키나와에서 본섬으로 이사오고 처음 맞이하는 여름 불꽃축제. 여동생인 안나가 늦봄부터 기대하던 이벤트 중 하나였다. 안나가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며 보여준 새하얀 인형을 료타가 창문 끝에 끈으로 고정했다. 무려 봄부터 창가에 묶어둔 인형이었다. 고작 불꽃놀이에 이런 것까지 매달아야해? 하고 시큰둥하게 말하던 료타도 미츠이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별 스티커를 붙여 표시해둔 달력 날짜에 계속 눈이 갔다.

토요일 늦은 오후. 보통의 가정이었으면 가족 모두가 저녁 시간을 앞두었겠으나 미야기네는 일나간 엄마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투투둑, 툭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더니 이내 쏴아아 쏟아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소나기 소리 사이로 벽에 걸린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미츠이와 약속한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버렸다.

료타가 차가운 물수건을 안나의 뜨거운 이마에 얹었다. 하필 해열파스가 다 떨어져서… . 싹싹하고 발랄했던 여동생이 정신도 못 차리고 고열에 시달리자, 료타는 덜컥 겁이 났다. 지나가는 감기일 뿐이라고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진정시켰으나, 료타는 하루 종일 여동생 옆을 지켰고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오키나와를 생각했다. 아빠, 엄마, 소타, 안나가 차례로 머릿속에 가득찼다가 갸날픈 목소리로 불려진 둘째의 이름에 연기처럼 흩어진다.


"료쨩… ."

"안나."

"불꽃축제는?"

"이렇게 아픈데 못 가지…"

"나 말고… 료쨩… ."


료쨩도 기다렸잖아… . 안나가 기대한 것만큼이나 둘째 오빠도 매일같이 달력을 보고있었다는 걸 알고 있던걸까. 힘 없이 풀린 눈이 느리게 감겼다가 다시 뜨인다. 아무말 없으니 안나가 오빠의 손을 잡았다. 료타보다 작고 부드러운 손이 뜨거웠다. 미츠이와 맞잡았던 손에서 느꼈단 뜨거움과는 다른 뜨거움. 그 차이가 료타는 두려워져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미츠이보다 안나가 더 중요한 건 당연하잖아. 오빠가 되어서 아픈 동생을 홀로 집에 두고 떠날 수 없다.

밋쨩은…, 미츠이 히사시는 돌아갔겠지.

약속한 시간은 한참 지났고 소나기는 그칠 기미가 없다. 그래도 그 미츠이니까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실망했으면 어쩌지. 미츠이가 두 번 다시 비밀기지에 오지 않으면, 나같은 거랑 농구하기 싫다고 하면… . 흐느끼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갈 뻔했다. 입술을 꾹 닫고 겨우 삼켰다.

료타의 손이 안나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배고프진 않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지 안나가 고개만 끄덕였다. 손을 조심스럽게 이불 속으로 넣었다. 안나의 이마에 올려진 물수건을 세 번 정도 다시 갈았을 때 현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렸다.

집을 나설 때 본 시계의 시침은 미야기를 망설이게 했으나, 집에 돌아온 엄마 얼굴을 본 순간부터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계속해서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한 시간 전만 해도 미츠이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 여겼는데, 이렇게 사람이 간사해도 되는 걸까. 미야기 료타는 태어나 두 번째로 하늘에 빌었다. 제가 나쁜 오빠라, 나쁜 동생이라 죄송해요. 그래도, 그래도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아니 용서하지 않아도 되니까... .

습기 가득한 대기 때문에 숨쉬기가 버거워도 달려야만 했다. 이렇게 정신없이 뛰다가 폐가 터져도 좋으니까. 늦었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서 확인해야 했다. 미츠이가 그곳에 없다하더라도 꼭. 요란하던 소나기가 지나간 직후라 얕은 빗방울만 이따금씩 길게 떨어졌다.

비가 내렸어도 불꽃놀이는 취소되지 않았는지 축제 때만 볼 수 있는 노점상들이 천막에 고인 빗물을 털어내고 있었다. 빨갛고 노란 조명들이 축축한 밤거리를 밝혔다. 음악 소리와 음식 냄새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항상 다니던 길로 지나갈 수가 없었다.


"허억. 하… 윽, 으욱."


코트에서도 이렇게 달려본 적은 없다. 가로등에 손을 뻗어 기대 고개를 숙이자 헛구역질이 멈추질 않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게 목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거칠게 입으로 내쉬는 숨에 비릿하게 피맛이 났다. 토기와 함께 입안 가득 타액이 고였다. 아직 공터까지는 거리가 남았는데… . 흐르는 땀을 대충 닦아내고 다른 길로 우회하려는 순간, 손목을 붙잡혀 몸이 뒤로 휘청였다. 그러자 다른 손이 미야기가 넘어지지 않도록 어깨를 받쳐 잡는다. 읏. 손에 힘이 들어가자 신음이 튀어나왔다. 등 뒤로 바짝 붙어오는 덩치에 덜컥 겁이나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뿌리치려 몸을 비틀었다.


"료타."

"… !"


젖은 검은 머리가 눈 바로 위까지 내려온 미츠이가 미야기를 본다. 진녹의 눈빛이 차갑고 목소리는 낮았다. 누가 봐도 화난듯한 모습이었다. 당황해서 입만 뻐끔거리자 미츠이가 한숨을 내쉰다. 길게 내쉰 한숨 소리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자, 미츠이가 미야기의 머리를 마구 헝클인다.


"두 시간 동안 안 보여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또 그 놀란 갈색 눈이 미츠이를 올려다본다. 그 말은 내가 안 올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야? 이렇게 늦었는데? 이렇게 또 비 맞으면서? 미츠이 팔에 걸린 봉투가 부시럭 거린다. 배고파서 먼저 샀어. 먹을래? 야키소바랑 무슨 떡? 이라던데, 잘생겼다고 하나 더 주셨어. 미츠이가 '잘생겼다고’를 강조하며 웃는다.


"밋쨩… 바보같아."

"늦은 건 너면서 왜 내가 바보야!"

"바보오… ."


미야기가 미츠이의 품에 달려들었다. 안긴 걸로는 부족해 두 팔 가득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마구 문댔다.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긴 손가락이, 이내 손바닥으로 뒤통수 전체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다정하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면 미츠이의 후드에서 맡았던 향기가 난다. 따스한 체향에 비 냄새가 섞여 축축했다. 그치만 그래서 더 좋아. 분명 미야기 료타만이 아는 냄새일테니까.

미츠이가 미리샀던 야키소바 말고도 타코야키, 꼬치구이, 시럽이 잔뜩 뿌려진 빙수도 샀다. 네 손 한가득이었는데 남자 중학생 두 명이서 먹으니 순식간이었다. 해변 담벼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표정은 무표정인데, 바닥에 닿지 않은 미야기의 발이 앞뒤로 하염없이 움직이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 보인다. 왜 늦었는지, 왜 기다렸는지 서로 묻지 않았다.

팟—,

황금색의 작은 불꽃 하나가 바다 위로 쏘아졌다. 이어서 알록달록한 빛 줄기 여럿이 뒤따르더니 연달아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원을 그리며 하늘에 퍼져간다. 잔잔한 수면에 반사된 불꽃이 배로 커 보였다.

불꽃놀이는 오키나와에서도 본 적 있다. 소타가 아빠에게 졸라서 온 가족이 함께 나하까지 가서 본 불꽃이었다. 지금의 하늘과 바다가 가득 찰 정도로 크고 화려하진 않았어도 어렸을 때 본 그 광경은 비현실적이어서 미야기에게는 마치 꿈같이 남은 기억이다. 아빠 품에서 펑, 펑 터지던 불꽃에 놀라다 꺄르르 웃던 여동생의 웃음소리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안나! 료타!" 동생들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소타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귀에 울린다. 그렇구나, 그런 날도 있었다. 아득해져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여러색으로 반짝이는 갈색 눈이 일렁이는 수평선을 담고 감겼다. 폭죽 소리가 이렇게 커다란데, 미츠이의 목소리는 귀를 파고든다. 료타, 보러오길 잘했다.


"… …응."

"같이 오자고 해줘서 고마워."

"응."


아마 미야기는 평생 모를거다. 하늘과 바다를 동시에 수놓는 불꽃이 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한데 미츠이는 보지 않았다는걸. 넋 놓고 올려다보고 있는 미야기의 옆모습만 보고 있었다는걸.



✶



불꽃놀이가 끝나자 해변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사라져간다. 바다로부터 불어온 바람에 화약 냄새가 스며 코끝에 스치자, 미야기가 얼굴을 찡그렸다. 담벼락에서 먼저 일어난 미츠이가 손을 내밀었다. 주저없이 잡은 손에 이끌려 미야기도 일어났다. 먹고 남은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정리하고 인파를 따라 해변을 벗어나려는데 여러명이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정확히는 미츠이의 앞이겠지만.


“밋쨩.”

“아, 사사키.”


“너무해 밋쨩! 분명 봄에는 나랑 같이 오기로 약속했잖아!”

미야기보다 더 큰 키에 긴 생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미츠이에게 버럭 화냈다. 작년에는 같이 왔으면서. 사사키 뒤 쪽에 서있던 이들 중 한 명이 거들듯이 중얼거린다. 내가 언제? 미츠이는 기억이 안 난다는 듯, 눈을 절반만 뜨고 무심하게 대꾸했다.


“다카오네랑 같이 논 거 아냐?”

“밋쨩이 없는데 그녀석들이랑 놀아서 뭐해?”


그리고 다카오는 재미없단말야! 볼을 부풀리고 앙칼지게 쏘아내는 목소리에 미야기가 순간 미츠이 등 뒤로 몸을 숨긴다. 검고 긴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사사키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여 미야기를 노려봤다. 마주하지 않아도 불쾌함과 적의가 가득하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우리를 바람맞히고 미츠이랑 같이 축제를 즐긴게, 이 쥐톨만한 남자애야?


“그런데 이쪽은 누구야. 처음보는데.”


사사키의 질문에 미츠이와 미야기를 번갈아 바라보는 눈이 많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미츠이 히사시에게 미야기 료타는 무엇일까. 미야기가 미츠이의 옷을 잡았다.

그리고 미츠이는 일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동생.”





















장편이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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