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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太陽雨, 1편 - 여우비 바로가기
만연한 여름이었다.
소나기 한 방울도 없이 뙤약볕만 내리 쬐는 날이 계속 됐다. 미츠이는 또 천장만 바라보며 나무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히, 후, 미 고양이도 서로 붙어있지 않고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자리를 찾아 저마다 누워있었고 그런 고양이들을 돌아가며 미야기가 쓰다듬고는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왜인지 미츠이의 마음에 걸렸다. 이제 하다하다 금수에게 질투를 느끼나?
미츠이와 미야기, 그리고 고양이. 모두 평소와 같아 보여도 전혀 달랐다.
우선 미야기도 고양이도 애교가 사라졌다. 미츠이에게 먼저 다가와 부비거나 등에 몸을 기대는 일이 없다. 서운하다가도 더워서 그러겠거니, 굳이 묻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스로도 너무 더워서 낮 동안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괜히 열 오르는 생각을 할 필요는 더더욱 없지.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건 이 미츠이가 싫어졌다면 이 허름한 창고에 찾아오지 않으면 될텐데 여전히 옆에 있는건 그대로지 않나…. 매일 저녁 샛별이 뜰 무렵에 농구공을 들고 원온원하러 가자하면 머뭇거리긴 해도 거절한 적도 없었고.
그날도 공터 이곳 저곳에 길게 자란 강아지 풀을 뜯어 고양이와 함께 놀던 미야기를 꼬셔 야외 코트로 데려갔던 날이다. 어쩌다보니 원온원보다 슛을 번갈아가며 넣는 대결이 되었다. 애초에 3포인트가 특기인 미츠이를 상대한다는게 말이 안되는데 미츠이는 미야기의 대범함을 높게 샀다. 아무래도, 기특하고 귀엽잖아. 저 작은 키로 나를 이겨보겠다는게. 함께 농구해도 소극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미야기가 적극적으로 변한 것도 좋았다. 미야기가 농구랑 더 가까워진 것 같고.
"드디어 이겨보려고?"
어쩌면 동생으로 남기 싫은 미야기의 발악이었을 수도 있다. 도발적인 미츠이의 목소리에 미야기가 훙, 소리를 내며 높게 점프했다. 지금까지 미츠이와 함께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는지 꽤 그럴듯 했다. 손목의 스냅과 함께 농구공이 미야기의 손끝을 떠난다.
짙은 보라색이 된 하늘에 가로등 불빛을 받은 미야기가 떠올라있다. 하늘거리는 머리칼, 떠나보낸 농구공에 고정된 갈색 눈동자. 그 몸을 받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미츠이가 손을 들어올렸다가 텅! 하고 림을 맞고 공이 튕겨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점수내지 못한 공이 데구르르 코트 위를 굴렀다. 미츠이가 배를 잡고 떠나가도록 웃는게 미워서 달려들다가 미야기의 정수리에 투둑 떨어지는 비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렇게 안오던 비가 이제야 오네."
이내 코트 위의 열기가 식어가는게 느껴졌다. 미츠이를 때릴려고 뻗은 팔을 미지근한 빗방울이 적시고 비오는 날 특유의 물비린내가 코끝을 스친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쏴아아 쏟아지는 비가 비현실 적 같았다. 미츠이가 스포츠 타올을 꺼내 멍해진 미야기의 머리에 얹고 귀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료타, 달려.
공터까지 쉬지 않고 빠르게 달려온 두 사람이 숨을 몰아 쉬었다. 둘다 머리가 내려 앉아 꼴이 말이 아녔다. 미츠이보다 머리가 길었던 미야기는 눈까지 가려 계속 손으로 털어내기 바빴고. 비좁은 길이 진흙탕이 되기 전에 창고까지 빠르게 걷기 시작하는데 날카로운 짐승 울음소리에 둘 다 고개를 들었다. 뒤이어 하악 거리는 고양이들 소리에 미야기가 먼저 달려갔다.
열린 창고 문 앞에서 꼬리를 몸에 말아 숨긴 히와 후를 뒤로하고 털을 바짝 세운 미가 자신보다 훨씬 큰 수컷 고양이를 상대하고 있었다.
처음보는 고양이?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고 온걸까? 무슨 상황인지 머리로 짐작하기도 전에 눈앞에서 검은 형체가 재빠르게 움직여 미를 덮쳤다. 두 짐승이 뒤엉키다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싸운다. 그리고 커다란 수컷 고양이가 미를 앞발로 짓누르고 뒷다리를 콱 물어 비틀었다.
"저리 가!"
미야기가 소리지르며 들고 있던 농구공을 집어 던졌다. 텅, 텅 튕겨온 농구공에 키이익 소리를 낸 고양이는 뒤이어 달려온 미츠이가 발을 몇 번 굴러 위협하자 순식간에 풀 숲으로 사라졌다. 히와 후는 여전히 경계하며 문 안쪽에서 하아악 거렸고, 미는 다리를 세우지 못한 채 쓰러져 앓았다.
새파랗게 질린 미야기가 재빠르게 다가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흥분한 미가 미야기의 손을 피하려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익숙한 손길임을 알아차렸는지 진정하기 시작했다.
…농구하러 가지만 않았어도…. 털에 핏자국이 짙게 남은 삼색 고양이를 끌어안으며 미야기가 울먹인다.
"괜찮았을거야!"
"뭐?"
미야기의 말에 미츠이는 지난번부터 왜 고양이와 함께 있는 미야기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지 깨닫는다. 어쩌면 미야기는 지금까지 이 녀석들을 돌본다는 이유로 농구를 멀리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 이 공터도 언젠가 전부 치워지고 건물이 들어설텐데, 그럼 아늑해보이는 이 비밀 기지도 없어질거고. 게다가 고양이 세 마리를 매일 같이 돌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태풍이 오면? 눈이 오면? 오늘은 고양이었지만 들개가 오면? 너는 네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이녀석들 전부 지키려고 할 테지.
그렇구나.
미야기 료타, 너는 여기에….
방금까지 그렇게 즐겁게 코트 위를 뛰었으면서 지금 네 모습을 봐. 비에 젖은 고양이를 더 품안으로 끌어안는 미야기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며 미츠이도 울분이 차올라 소리쳤다.
"웃기지 마, 료타. 나한테 이 녀석들이 너보다 소중할 리 없잖아!"
미야기가 겁에 질린 눈으로 미츠이를 올려다본다.
"더는 이녀석들을 핑계로 네가 해야하는 걸 포기하지마. 내 시간을 헛되게 하지 말라고."
기어이 눈물을 흘리는 미야기 앞에 다가간 미츠이가 그 품에서 삼색 고양이를 어렵지 않게 뺏어 들었다. 문 앞에서 움츠러든 다른 고양이들도 품에 안아 들었다. 그저 저를 허망하게 올려다 보는 미야기는 그대로 바닥에 둔 채.
"내일부터 여기에 오지 마. 나도 안올거야. 이녀석들도 없을거고. 내가 데리고 갈거니까."
"왜! 시, 싫…어… 밋쨩 어째서…."
"이러지 않으면 넌 농구 안 할 생각이잖아."
"… 그게, 무슨 말,"
"나는 료타가 농구를 했으면 좋겠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츠이가 발걸음을 뗀다. 이건 아니야. 밋쨩, 제발. 바닥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던 미야기는 미츠이가 점점 두 사람의 비밀 기지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도 보지 못한다. 널 좋아하니까. 농구하는 너를 정말로 좋아해. 처음 봤던 그날부터 분명 그랬던 거야. 그래, 그런 네가 혼자 있는게 신경쓰여서….
"우리, 다음에 또 같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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