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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太陽雨, 1편 - 여우비 바로가기
미츠이의 부활동이 없는 일주일 간 비밀 기지에는 여러 물건이 추가됐다. 작은 시계, 플라스틱 의자와 두터운 담요, 고양이 장난감, 진짜 과자가 담긴 상자 그리고 만화나 농구 월간지. 어느 날에는 장난감 농구공과 농구 골대를 가져와서는 창고 외벽에 설치까지했다.
이게 뭐냐는 미야기의 눈빛에 미츠이는 자기가 아주 어렸을 때 갖고 놀던거라했던가. 그러니까, 그런 걸 왜 가져와? 미야기는 미츠이의 손에 다 들어오는 형광주황색 장난감 공이 미니 골대에 쏙 들어가는 걸 끝까지 보다 3평도 안되는 창고 구석에 고이 모셔둔 오래된 농구공을 봤다. 이곳에서 고양이를 발견한 뒤로는 그 야외 코트에 가지 않았다. 어쩌면 미츠이가 그걸 눈치 챈걸지도 모른다.
미야기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비밀 기지로 달려갔다. 매일 매일 먼저 도착해 미츠이를 기다리는 형세가 된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돌봐온 고양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던건 사실이니까.
"료타? 나왔어."
미츠이의 목소리에 미야기가 고개를 들었다. 미츠이가 저를 부르며 비밀 기지에 나타나는 시간은 보통 오후 5시 정도. 학교는 그것보다 훨씬 일찍 끝났을 테고 아직 체육관 공사가 끝날 시기는 아니니까 두세 시간 어디선가 농구하다 오는 것 같았다.
"먀아아."
미츠이의 목소리에 고양이들이 저마다 귀엽게 울더니 귀를 세우고 기지개를 켠다. 부숭부숭하게 부풀어 끝이 휜 꼬리가 세 개. 창고 밖으로 가볍게 종종 뛰어나가는 건 반갑다는 뜻이다. 미야기보다 한참은 늦게와도 미츠이는 간식거리와 함께 나타나니까.
미야기는 미츠이가 두고간 월간 농구의 신간을 읽고 있었다. 오키나와를 떠날 시점부터 미야기 가에는 구독이 끊긴 그 잡지. 여름방학, 그러니까 다음달에 있을 인터하이를 앞두고 월간 바스케의 표지는 산왕이 장식했다. 또 그 빡빡이 머리. 미야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제 …나랑 상관 없잖아.
나무벽 틈새로 저물기 시작한 금빛 햇살이 들이찬다. 눈이 부셔 손으로 가리면 맭, 미야옹, 왜옹. 고양이들 우는 소리도 흘러들어오고, 끼익거리는 나무 문이 열리며 미츠이가 역광으로 들이찬다.
"저녁은?"
먹었어? 줄곧 미야기는 어떤 소리도 낸 적 없는데, 당연히 창고 안에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묻는다. 미츠이의 발끝부터 길게 드리운 그림자가 짙다. 눈이 부셔 잘 보이지 않던 시야가 편안해졌다. 창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온 미츠이는 좁은 탁자 아래에 가방을 내려놓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미야기의 옆에 접이식 의자를 끌고와 바짝 붙어 앉았다.
"가지고 오길 잘했네."
"응?"
"월간 바스케"
"아…"
"관심 가는 학교라도 있어?"
"나는… 글쎄."
"나도 글쎄."
솔직히 난, 마음에 드는 곳이 아직 없거든. 미츠이가 덥다며 교복 셔츠를 홱 벗더니, 흰 티셔츠를 잡고 펄럭인다. 새하얀 티셔츠 자락에 처음 본 날의 미츠이와 모습이 겹쳐보였다. 미야기는 귀 끝이 묘하게 뜨겁다는 생각을 하며 절반 정도 읽은 잡지를 덮었다. 자자, 식탁 치우고. 잔소리하는 형 흉내를 내는 미츠이가 상체를 숙여 더플백을 연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버거 세트 하나에 단품 햄버거를 꺼내 좁은 탁자에 올려둔다. 둥글고 노란 M 로고에 미야기의 고개가 가까워졌다.
"어차피 2학년이니까 고민은 내년에 해도 괜찮을 것 같고."
료타가 나랑 같은 학교에 가면 좋겠는데. 미츠이가 덧붙인 말은 가볍게 무시하더니, 감자 튀김의 고소한 냄새에는 미야기가 코를 움찔인다. 두 눈은 미츠이의 손에 들린 햄버거에 꽂혔고.
"저 녀석들 간식까지 사다 보니까, 세트 두 개는 용돈으로 안 되더라."
"…내 거는 안사도 됐는데."
"하아? 동생 앞에서 형 혼자 먹으라고?"
"말했잖아. 미츠이 동생 안 해."
그리고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도 하지마.
고집은 미츠이만큼이나 대단해서 영 못 당하겠다.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일단 먹어. 데리야키 버거의 포장지를 벗겨서 코 앞에 내밀어주니 침을 꼴깍 삼킨 미야기가 두 손으로 받아들어 크게 한 입한다. 맛있게 먹을 거면서. 작은 입으로 합, 합 여러 번 나눠 먹는 게 저기 고양이들이랑 아주 똑 닮았다.
"아, 어린이 세트면 살 수 있었을지도?"
"……."
내려온 앞머리에 가려져 잘 안보였지만, 또 눈썹 하나만 높이 뜨우고서 못난 표정으로 노려본다. 입술은 두웅, 내밀고 감자 튀김을 한 번에 두 세개 집어 케챱에 푹 찍어 입에 넣는다. 훙, 하는 소리까지 내더니 고개를 돌려 햄버거를 마저 먹는 모습에 미츠이가 푸하하 웃고말았다. 심술부리는 게 고작 감자튀김 나보다 더 많이 먹는 거냐고.
"맭."
밖에서 저들끼리 놀던 고양이 세 마리가 창고 안으로 따라 들어와 탁자 위를 올려다본다. 너희 먹을 건 아까 다 줬잖아. 이건 우리들 몫이라고. 미츠이가 친절히 설명해도 고양이들은 들을 생각이 없다. 바지를 타고 기어이 올라와 미야기의 무릎에 자리 잡은 게 히쨩과 훗쨩. 밋쨩은 여전히 미츠이의 신발에 관심이 많은지 신발끈을 입으로 물고 잡아당기며 논다.
"밋쨩."
"응?"
미야기가 또 얼굴을 붉혔다.
"미츠이… 말고."
작게 웅얼거리며 삼색 고양이를 들어올린다. 고양이가 물고 늘어져 풀린 신발끈이 끝까지 물려 팽팽하다가, 미야기가 작은 털복숭이의 몸을 가볍게 흔들며, 밋쨩 이제 놔. 말하니 그제야 고양이 녀석이 입을 벌렸다.
그르릉 그르릉 진동 소리를 무한으로 내는 아기 고양이 세 마리를 무릎 위에 넘치게 올려두고 하염없이 쓰다듬는 미야기는 마냥 행복해보이는데, 어쩐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츠이는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진다. 고양이들과 장난치는 미야기를 앞에두고 왜 그런지 생각해보지만 뚜렷하진 않다. 별일 아니겠거니, 자기 몫의 햄버거를 먹어치우고 얼음이 녹아 미지근해진 콜라를 빨대도 없이 들이켰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장마가 한창이다. 몇 주 전, 맑은 하늘에 보석같이 흩날리던 여우비는 한낮에 꾼 꿈이라도 된 것 같이. 수요일 밤부터 쏟아진 거센 빗줄기는 토요일 오후가 지나도 그칠 줄 몰랐고 이따금씩 돌풍까지 불어 창문이 덜컹거릴 정도였다. 짙은 회색 빛의 구름 사이로 새하얗게 번쩍이다 우르릉 하고 낮은 소리가 나니 미츠이의 머릿속은 비밀 기지로 가득찬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오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여기저기 틈새가 벌어져 헤진 벽과 구멍난 천장의 창고도, 그 안에 있을 아기 고양이 세 마리도, 그리고 그 모든 걸 걱정하고 있을 미야기 료타도.
그 꼬맹이는 이렇게 궂은 날씨에도 꼭 그곳에 있을 것만 같아서.
'바보도 아니고. 설마….'
텁, 침대에 누워 농구공을 허공에 가볍게 스냅하던 미츠이가 공을 한 손으로 잡는다. 진녹의 눈동자가 벽에 걸린 시계와 달력을 번갈아 확인한다.
지금은 오후 네시.
그리고 료타를 못 본 지는 삼 일째.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번호라도 물어봐 둘 걸. 미츠이는 농구공을 침대 옆 책상에 툭 올려두고 도로 침대에 누웠다.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던 눈이 가늘어지고 미간은 좁아든다.
신경쓰여.
미야기 료타를 처음 봤던 날, 골대 앞에서 홀로 있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미츠이가 벌떡 일어나 더플백에 있는대로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다. 녀석이 있는 지, 없는 지는 직접 가서 확인하면 되잖아. 스포츠 타올, 체육복… 그리고 다락방에 몰래 들어가 아버지의 캠핑 장비를 뒤져 방수시트와 우비를 꺼내 가방에 우겨 넣었다. 새삼, 운동한다고 남들보다 큰 가방을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다. 두둑해진 가방을 어깨에 메고 운동화가 아닌 장화를 꺼내 신는다. 뜬금없이 현관에 선 아들을 보고 의아해하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미츠이는 천연덕스레 거짓말한다.
"오늘 다카오네 집에서 자기로 했어. 내일 올게."
"히사시, 잠깐만. 지금?"
"밖에 비가 이렇게 오는데?"
"응. 괜찮아."
집에서 비밀 기지까지는 30분 거리. 뛰어가면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거다. 미츠이는 집 대문을 빠져 나오자마자 들고 있던 우산은 말아 접어 손에 쥐고 더플백에서 우비를 꺼내 입고 가볍게 뛰기 시작한다.
미야기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공터 입구는 물바다였다. 고양이가 있는 수풀 안쪽 창고까지 찰박거리는 물웅덩이가 작고 너른 게 여럿 생겨 진입하기 어려웠다. 일주일 전까지는 미야기의 가슴까지 오던 기다란 풀들이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자라나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문제라고 해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미야기가 풀숲으로 펄쩍 뛰어들었다. 비바람에 티셔츠와 반바지가 젖어드는 것도 모르고.
길이라고 하기도 힘든 좁디 좁은 길, 어두워져서 제대로 보지 못한 웅덩이를 급하게 피하려다 미끄러졌다. 넘어지지 않으려 겨우 균형을 잡았더니 바닥을, 아니 물컹거리는 진흙에 발을 헛딛어 결국 신발 한 짝이 푹 처박혔다. 마치 늪지대 괴물에게 붙잡혔다 겨우 벗어난 것처럼 질퍽거리는 진흙에서 발을 겨우 떼어내면 으, 아으. 싫은 소리가 절로 났다.
신발도 옷도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 도착한 창고는 천장 틈으로 빗물이 새 여기저기가 축축했다. 그래도 비가 아주 쏟아지는 것 치고는 젖지 않은 부분이 있어 불행 중 다행일까. 등 뒤쪽으로 불어오는 비바람에 몸이 절로 바르릇 떨렸다. 미야기가 고개를 흔들어 머리에서 물을 털어내고 티셔츠를 훌렁 벗어 쥐어 짜 다시 입었다.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어진 우산은 창고 문고리에 걸고 플라스틱으로 된 접이식 의자는 접어 밖의 좁은 처마 아래에 세워둔다.
젖기 시작한 종이 박스를 열어 상태를 살폈다. 미츠이가 며칠 전 짐을 줄인다며 두고간 무석중 후드 집업과 담요, 과자, 잡지가 있다. 추위에 한 번더 몸을 떤 미야기가 잠깐 고민하다 미츠이의 옷을 집어내 걸쳤다. 어차피, 미츠이는 모를테니까. 엉덩이 바로 아래까지 내려오는 넓은 품의 후드는 팔이 길어 소매 끝에 겨우 손가락 한마디가 보였다. 보드라운 섬유에서 지금까지는 인지하지 못했던 미츠이의 냄새가 난다. 비에 젖어 더 진해진 것 같기도 하고….
'…왜 안심이 되는거지.'
뒷목이 홧홧해진 미야기는 팔을 걷고 비가 새지 않는 반대편 구석으로 탁자와 상자들을 옮긴다. 좁은 창고 안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니자 자고 있던 삼색 고양이가 뛰어나와 미야기의 뒤꽁무니를 바짝 쫓아다닌다. 탁자 위에 상태가 제일 괜찮은 박스를 올려두고 그 안에는 미츠이가 두고간 짐이 젖지 않게 옮겼다. 젖기 시작한 종이 박스들은 펼쳐서 축축한 바닥에 깔자, 밋쨩이 발톱을 세우고 그 위를 뜯기 시작한다. 재난이나 다름없는 날씨에도 맹랑한 고양이를 보며 미야기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근데 왜 밋쨩만 있지?'
짐 정리를 마친 미야기는 마지막으로 세 마리 모두 잘 있는지 살펴본다. 고양이들이 항상 옹기 종기 모여있던 자리에 히쨩은 몸을 둥글게 말아 세상 모르게 자고 있고 검은색의 훗쨩이 없다.
비밀 기지에 도착한 미츠이를 반기는 건 히와 미, 고양이 두 마리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왔을 때보다 정리된 창고와 탁자에 올려진 상자 위에 어색하게 꺼내져있는 농구부 후드 집업. 의심할 것도 없이 분명 미야기가 있던 흔적들이다. 어딜 간거지. 나머지 한 마리는 또 어디갔고? 미츠이가 몸을 숙여 히와 미의 정수리를 번갈아 쓰다듬는다.
"너네 엄마랑 둘째는 어디갔어."
"왥."
미가 미츠이를 향해 무어라 대답한 것처럼 울더니, 바닥을 발톱으로 삭삭삭 긁고 탁자 아래로 이동해 눕는다. 히도 미를 쪼르르 따라가 그 옆에 기대 벌러덩 눕더니 꾸벅꾸벅 존다. 걱정되서 이 날씨에도 달려왔거늘, 괜한 걱정이었나 싶다.
미츠이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에 손을 뻗는 순간, 동시에 문이 열린다. 문 앞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망으로 푹 젖은 미야기가 있었다. 검은 털뭉치를 품에 안고 덜덜 떨고서. 미츠이를 보고 놀란 듯 입을 벌렸지만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미츠이도 마찬가지였다. 미야기의 처참한 몰골에 놀라 입 밖으로 어느 말도 꺼내지 못하다, 미야기를 잡아 당겨 끌어안았다. 생각하는 것보다도 몸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온 몸이 차갑다. 계속 떨고 있고. 넌 도대체가, 도대체.
"천둥에… 놀라서, 훗… 쨩이… 창고를 나갔었나봐."
미츠이의 뜨거운 가슴팍에 미야기가 이마를 기대고 떨리는 입술로 천천히 말한다.
"너 조용히 해."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에 미야기가 '언제 왔어?' 물으려다 도로 입을 닫았다. 미츠이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가는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후드에서 맡았던 미츠이의 냄새. 똑같지만 더 좋은 냄새. 따뜻한 체온에 떨림이 멈추고 나서야 멀어지는 품에 미야기가 고개를 들었다. 굳은 표정에 미야기는 이해할 수 없다.
왜 화가 난걸까.
미간을 좁힌 미츠이가 미야기의 팔 안에서 검은 고양이를 잡아 들어 히쨩과 밋쨩 옆에 내려 놓는다. 자고 있던 두 녀석이 일어나 축축하게 젖은 검은 털을 마구 핥기 시작한다.
미츠이는 계속 말이 없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두둑해보이는 더플백에서 타올을 꺼내 미야기의 머리에 얹어 마구 문지르기 시작한다. 이어서 더러워진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티셔츠도 훌렁 벗긴다. 당황한 미야기를 마른 바닥 위에 세우더니 쭈글거리는 손 끝부터 목덜미, 등까지 다시 제대로 닦아냈다.
"잠, …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옷 벗기는 걸 말릴 수가 없었다. 급하게 미야기가 손을 뻗어 미츠이의 어깨를 잡았지만 미츠이는 멈출 생각이 없다. 기어이 아랫도리 밴딩까지 커다란 손을 뻗어오자 거짓말같이 서늘했던 주변이 금새 뜨거워졌다.
"미… 밋, ! 아, 아래는 내가 할게!"
작지만 단단한 몸이 미츠이를 밀쳤다. 꽤 억센 손길에 뒤로 밀려나서야 미츠이가 조금 심했나 싶어 턱 끝을 긁적였다.
"… 보지마…."
보지말라는 미야기의 말에 얼굴이 타오르듯 붉어져, 미츠이가 고개를 홱 돌린다. 뭐냐고… 역시 여자인거 아냐? 아니… 가슴이, 남자였어. 팔도 어깨도 단단했고. 미야기를 등지고 돌아선 미츠이가 침을 삼킨다. 무언가를 인지하니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는다. 왜? 미야기 료타가 남자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
쏴아아—
잠잠해진 줄 알았던 빗줄기가 다시 무섭게 쏟아지는 소리에 미츠이가 정신을 차린다.
"옷… 엉망이던데. 혹시 몰라서 체육복 가져왔으니까 가방에서 꺼내 입어."
뒤돌아 선채 더플백을 향해 등 뒤로 손짓했다. 그리고 빙금 벗겨낸 미야기의 회색 티셔츠와 흰 양말은 빗물을 꽉 짜내 창고 벽에 걸었다.
"… 속옷은 없지만."
등 뒤로 끽, 끼익 작게 움직이는 발소리에 이어서 지익—, 하고 더플백의 지퍼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멈추자 한 번 더 침을 꼴깍 삼키고 뒤돌았다. 남색의 체육복을 헐렁하게 입은 미야기가 소매를 걷고 있었다. 왼 가슴에는 「三井」라 쓰여있어 미츠이가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는지 모른다.
"왜?"
"아니."
"그, 고마어…. 꼭 빨아서 돌려줄게."
"어, 응."
미츠이가 조금 뚝딱이더니, 미야기 옆에 섰다. 더플백 가장 아래에서 방수 시트를 꺼내 바닥에 넓게 깔았다. 그러고는 장화도 벗고 가운데에 가까이에 앉더니 옆자리를 툭툭 친다. 미야기가 별 말 없이 맨발로 다가오더니 그 옆에 앉았다. 고양이들이 서로의 체온에 기대는 것처럼, 그렇게 둘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창고 상태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아 다행이었다. 지나친 거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것저것 챙겨오길 잘했네.
"내가 여기 있을거란 걸 알았어?"
"그냥, 그럴 것 같았어."
"…안 와도 됐는데."
"척하기는."
나도 걱정되서 온거야. 그 뒤로 이어진 대화는 없다. 미야기가 더 바짝 붙어오는게 느껴진다. 저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키, 그 어깨에 머리를 기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미츠이도 옆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무게에 고개를 기대고 선잠에 빠졌다.
눈을 떠보니 누워서 자고있다.
미츠이의 품에 안겨 담요까지 같이 덮고 고양이들도 둘 사이에 비집고 들어와 새액새액 자고있다. 여기서 잘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비는 그친건가? 미야기가 몸을 일으키려하자 커다란 손이 허리를 붙잡아 다시 눕힌다.
"더 자도 돼."
"…밋쨩."
"또 고양이?"
"아니, 미츠이."
미츠이가 픽, 웃더니 턱 아래까지 담요를 덮어준다. 미츠이는 자기가 형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다정한걸까? 형, 동생 사이가 아니었음 하는 건 나뿐인걸까?
미야기가 다시 눈을 감았다.